- LG증권 뉴욕법인 차장 이동훈씨는 월드트레이드센터1 84층에서 근무
- 빌딩1의 비행기 충돌지점이 91층~86층 정도라고 하니까
충돌지점과 정말 가까이 있었음
아침회의를 시작한 지 10분쯤 흘렀을 때였다. 어마어마한 충격과 함께 폭발음이 났다. 이 차장은 순간 의자와 함께 뒤로 ‘콰당’ 넘어갔다. 뒷머리의 통증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세계사를 바꾼 9·11 테러는 이렇게 찾아왔다.
처음 충격을 받고 넘어졌을 때 무슨 생각을 했나.
“지진 아니면 지하 쇼핑몰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했다. 지하 몰에서의 폭탄테러는 그 전에도 한 번 있었다. 그래서 직원에게 911로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불통이었다. 사무실 천장은 3분의 1쯤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복도로 통하는 회사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커먼 구름이 들어왔다. 직원들에게 문틈을 막으라고 말하고 TV를 켰다. TV에선 월드트레이드센터에 경비행기가 실수로 부딪혔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TV 화면을 보고 우리는 동시에 ‘우리가 저기쯤인데’라고 소리쳤다. 처음엔 소방관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했다.”
- 티비로 중계 화면을 보는데 빌딩이 뚝하고 끊어질 것처럼 느껴져서 비상구로 탈출을 결심
그렇게 계단을 따라 1층까지 내려온 건가.
“아니다. 78층까지 내려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78층에서는 빌딩 시스템이 달라 비상계단을 갈아타야 했다. 문제는 78층 계단의 방화문이 열리지 않았다. 충격에 문이 틀어져버렸다. 난감했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당황해 하고 있을 때 79층에서 ‘컴 오버 히어(Come over here)’하는 소리가 들렸다. 79층으로 올라가니 복도가 엉망이었다. 190㎝가 넘어 보이는 건장한 흑인이 소방호스로 불을 끄고 있었다. 그가 소방호스로 만들어준 길을 따라 나
와 이동영씨, 제니퍼 최씨가 함께 움직였다. 우리는 다른 비상구로 내려가 78층에서 비상구를 갈아탈 수 있었다.
- 55층부터 내려가는 사람이 계단에 꽉 참
하지만 사람들은 질서있게 한 줄을 노약자, 부상자가 빨리 내려갈 수 있게 비워둠
소방관을 처음 만난 것은 몇 층인가.
“40층 정도 되었을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내려가고 있는데 밑에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방관들은 산소통, 도끼 등 무거운 장비를 메고 계단을 올라오느라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그들은 모자를 벗고 가슴을 풀어헤친 상태였다. 그들이 막힌 비상구를 깨고 열어줬다.”
그 이후엔 소방관을 언제 만났나.
“한참을 내려가는데 또 박수가 터졌다. 소방관 7~8명이 또 올라왔다. 그리고 2~3층 뒤처져서 앳돼 보이는 소방관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쳤고 나도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는 너무나 힘들어하면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소방관이 된 신참 같았다. 이런 비상 상황이 아니면 도저히 투입되지 않았을 그런 앳된 소방관이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쟤가 90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하고 걱정했다. 그 뒤 3개월 이상 꿈에서 그 소방관의 눈빛을 보곤 했다. 그때마다 잠에서 깼다. 죽으러 올라가는 사람을 향해 박수를 쳤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40층에서 1층 로비까지 내려올 때는 큰 문제가 없었나.
“내려가다 보니까 23층 복도에 비상응급실이 설치된 것이 보였다. 소방관이 계단실 입구에서 두 줄로 줄지어 내려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퍼스트 에이드(first aid) 라이선스!’ 응급치료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소리였다. 어떤 40대 백인 여성이 손을 들고 23층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1층 로비에 내려갔을 때의 상황은 어땠나.
“1층 로비는 엉망이었다. 바깥으로 나가는 현관문은 잠겨있었다. 로비에 있는 경찰들은 계단을 타고 내려온 사람을 지하 몰(mall)로 인도하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뭔가 계속해서 퍽퍽퍽퍽 떨어졌다. 시커먼 모습이라 무슨
잔해인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게 사람들이 고층에서 떨어지며 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지하 몰의 상황은 어땠나.
“지하 몰은 반대편의 다른 빌딩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은 안내에 따라 맞은편에 있는 ‘6 월드’를 향해 걷고 있었다. 쇼핑몰 내부는 내가 잘 아는 곳이다. 150m 정도만 걸으면 ‘6 월드’에 다다를 수 있었다. 15~20m쯤 걷고 있을 때였다. 쿠르릉 하는 엄청난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 ‘런(run·달려라)’하고 외쳤다.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커먼 구름 덩어리가 몰을 가득 채우며 쫓아오고 있었다. 공기, 열기, 잔해 등이 어마어마한 압력을 받아 뿜어져 나왔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튕겨져 나오는 게 보였다. 나는 방향이 꺾이는 모서리 쪽을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지만, 곧 몸이 붕 떠서 바닥에 쓰러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언제 정신을 차렸나.
“얼마쯤 지났을 때 엎어진 자세로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 여기가 죽으면 오는 데구나. 내가 지금 죽은 거구나.’ 한동안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멀리서 희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내 손발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랜턴 불빛이 줄지어 보였다. 소방관들이었다. 먼지층이 두터우니까 마치 랜턴 불빛이 반딧불처럼 점점이 반짝거렸다. 불빛은 채 1m 도 밝히지 못했다.”
“그때 어떤 소방관이 ‘혼자 걸을 수 있는 사람은 옆 사람 손을 잡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했다. 내 옆에는 제니퍼 최가 있었다. 이동영씨는 보이지 않았다. 소방관 1명에 5~6명씩 손을 잡고 걸었다. 잔해를 헤치면서 걷다 보니 눈에 익은 잡화점 간판이 보였다. 그렇다면 ‘6 월드’까지는 100m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6 월드’를 향해 걷는데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비치고 있었다. 누군가 몰을 덮고 있는 지상에 구멍을 뚫어 사다리를 내려놓은 것이었다. 우리는 사다리를 타고 비로소 지상으로 나갔다. 우리를 안내해준 소방관은 다시 사다리를 타고 안으로 내려갔다.”
오랫동안 잠을 못 잤다고 했는데.
“꿈에서 세 사람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만난 어린 소방관과 사다리를 다시 타고 지하몰로 들어간 소방관, 23층에서 응급치료 자원봉사를 지원한 백인 여성이었다. 죽으러 올라가는 소방관에게 박수를 쳐서 올려 보냈다는 죄책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응급치료 봉사를 자원한 그 백인 여성은 55층부터 함께 계단을 내려온 사람이었다. 자격증이 없어도 도와줄 수 있었는데, 그 여성의 얼굴이 떠올라 살아있는 게 미안했다.”
인생관에도 9ㆍ11이 큰 변화를 주었을 텐데.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슬람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게 왜 이런 피해를 주느냐고 화를 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슬람 입장을 이해하는 쪽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느꼈다. 다원적 가치에 대한 이해심이 커졌다. 그전까지는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후 관용적인 마음이 생겼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불교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구체적인 삶의 태도에서는 어떤가.
“세계무역센터는 화이트칼라들이라면 한번쯤 근무했으면 하고 바라던 곳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잘나고 부자고 권력이 있어도 미래에 어떤 상황이 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큰 꿈이 있었다. 하지만 아등바등 살면서 꿈을 이룬다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일하겠다고 결심했다. 그후 골프를 끊었고 출장도 주말에는 가지 않겠다고 회사에 얘기했다. 즐길 수 있을 때 가족과 즐기며 사는 게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동훈
1967년생. 연세대 중문과 졸업. 1992년 대한항공 입사. 펜실베이니아대학 워튼스쿨 MBA. 1995년 LG증권 근무. 1999년 LG증권 뉴욕법인 근무. BNP파리바은행·도이치방크 거쳐 현 로열캐나다은행 홍콩지점 상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