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계급 특진을 받은 고문관 병사
인천에서의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낙동강 방어선에도 활력이 생겨 우리 국군이 한창 밀고 올라갈 적에 일이다.
이 일은 우리 부대가 경상도 영천 지역 쪽에서 주둔할때에 벌어진 일이다.
자기 이름 석자도 제대로 못쓰는 고문관 이병 하나가 있었는데 하루는 근무를 서는 도중 배가 고파 무라도 캐먹으려고 밭에 잠깐 나갔다 보다.
그러던 와중 논밭 사이 대로에서 탱크 하나가 지나가는 것을 발견 한후 " 오라이 !!~" 하고 그 탱크를 멈춰 세웠다.
혹시 미군 탱크인가, 하고 뭣좀 얻어먹기 위해 세운것인데,
잠시후 해치문을 열고 나온 것은 인민군 병사 서너명 이었다.
그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채 항복의사를 전했다.
그 고문관 이병은 그자리에서 얼어버린후 그대로 부대로 복귀 하였고 인민군을 생포한 공으로 그날 이후 바로
상등 병으로 특진했다.
인민군의 전차부대는 엘리트 군인 들로, 일개 병사 하나가 사주 경계도 하지 않은채 탱크를 멈춰 세운것을 보고
이미 본인들이 포위를 당한 줄 알고 있었고 ,
총구도 겨누지 않고 부대로 돌아가는것을 보고 이미 저격병이 포진 되어있었는 줄 알았다고 한다.
무식했던 국군과 엘리트 인민군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2. 엉터리 연대장
(중략)......
전시 상황에는 원래 그렇게 한다, 아마 이것도 산 골짜기에 있는 마을을 점령한 후 벌어진 이야기 이다.
본래 마을 을 점령 하면 병사들의 거처와 지휘 통제소를 구축하는것이 일순위 였다.
그 날도 으레 마을에 있는 아무 빈 초가집이나 정해서 지휘 통제소로 삼고 잠시 거주중 이었던것 같다.
그런데 어디서 온건지 미군 부대 사단장과 고문관이 이 곳 점령지를 순찰을 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지휘통제소 초가집 지붕 위에 바주카포를 들고 혼자 서있는 병사를 미군 사단장이 발견 하게된다.
" 저병사는 왜 혼자 지붕위에서 저러고 있는가 ? " 라고 미군 사단장이 물었고 연대장의 답변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 이방법은 내가 독립 운동할때에도 쓴것인데 , 병사 하나를 지붕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 버리면 그 병사는 밤새 훌륭한 경계병이 된다. " 라는 답변 이었다.
3. 신원 미상의 병사
오늘 날에도 간간히 인민군복을 입고 대항군 훈련이라는 것을 하는 군인들을 볼 수있다.
당시 우리가 전투를 치루기 전에 미상 지역에 소대원 들을 인민군복을 입혀 놓고 정찰을 돌곤 했었다.
내가 신임 소대장으로서 참전했을 당시 내 소대의 이야기이다.
그날도 인인군 복을 입고 정찰을 시작 하던 때였다.
그러던 와중 우리소대는 진짜로 인민군 부대를 마주쳤고 짧은 시간의 교전을 치루고 간신히 빠져나와 부대로 돌아갈 준비를 하게 되었다.
부대에 가까이 오기전 갑자기 소대의 고참 병사가 나에게 뭔가 이상하다고 따로 와서 속삭였다.. 인원수를 세어 봤는데 한명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자리에서 휴식시간을 가진다 하여 잠깐 멈추고 인원을 세어봤는데 정말로 얼굴을 모르는 병사가 한명 있었다.
나는 그 고참 병사하고만 그 사실을 알기로 하고 그대로 부대에 복귀 하기 위해 행군을 시작했는데, 그때
신원 미상의 병사가 " 동무 ,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요? " 라고 물었다.
다행히 그 고참 병사가 이북 사람이라 " 우리 부대로 갑니다 안심하시라요." 라고 말을해 안정 시켰교 ,
우리는 그길로 부대로 들어가 인민군 한명을 생포 하게 되었다.
4. 갓뎀 ROKMC
그때 당시 한국 해병대의 위상은 미군에도 명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아더 장군이 역사상 불가사의한 확률의 상륙작전을 기획하는 도중, 미해군 함대에는 한국 해병대와 유엔군이 함께 탑승 중이었다.
미 해군주방장들의 가장 큰 골칫 거리가 한국 해병대 였는데 이들의 한끼 식사량이 여타 다른 군의 두배가 넘기 때문이었다.
미해군 취사병들의 주 일거리는 ' 한번 배식을 받은 한국 해병이 다시 배식을 받는지 감시하는 것 ' 이었다.
게다가 반찬에 고기가 나온 날이면 한국해병대의 설사로 함선 내의 악취가 진동 했다.
한국 해병대원들은 양변기를 사용 할 줄 몰라 그곳에 대고 세면을 하거나 , 화장실 바닥에 그냥 대변을 누곤 해서
미해군의 당시 유행어는 "갓뎀 ROKMC" 가 되버렸다.
한국 해병대가 서울에 진공하여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그 역사적인 상륙작전의 뒤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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