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보

재즈 음악가 Alice Coltrane에 일생.txt

by .           2021. 1. 30.
반응형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은 한번씩 들어봤겠지? 그런데 그의 인생 말년에 새로운 음악적 지평을 열어주는데 기여했던 그의 아내 Alice Coltrane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

앨리스의 업적은 최근에 들어서야 재즈씬을 아울러 예술 전반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수십년동안 많은 재즈 꼰대들에 의해 오해되고 무시되었는데 그녀의 남편 존 콜트레인 그룹 (John Coltrane Group)의 해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둥 비틀즈의 해체의 원인인이된 오노요코 (Ono Yoko)처럼 보기도 했어. 또, 그녀의 음악은 그 그 당시에 평가되기에 진보적이기도 했고 남편은 이미 대가로 인정받는 재즈계의 거물이였기 때문에 그의 명성과 비교되며 질타를 받았었어.
그래서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명의 팬으로서 앨리스를 대변해볼겸, 그녀를 중심으로 그녀의 삶과 재즈에 대해서 내가 아는내로 몇자 적어볼게.



Alice Coltrane / Alice Mcleod (1937 - 2007)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재즈 하프(harp) 연주자, 재즈 피아니스트, 보컬리스트, 힌두 스와미(Swami) 이자 재즈 섹소폰 연주자의 대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아내.
수학적이고 지성적인 콜트레인의 초기 스타일과는 달리, 그의 후기 아방가르드적 사운드 철학 구축에 촉매제 역할을 했고 재즈에 하프라는 악기를 도입한 초기 선구자중 한사람이며, 현대 아방가르드-재즈, 서브컬쳐 등에 영향을 끼친 인물.



1937년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Alice McLeod 는 음악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 어릴적부터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배웠고 가스펠, 재즈, 블루스 등등 많은 영향을 받으며 9살 부터는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음악 신동이었음.
10살 무렵엔 이복오빠이자 베이시스트였던 어니 패로우 (Ernest Farrow) 를 통해 처음 비밥을 접하게 되고 그 뒤로 재즈에 매료됨.
20살이 되기 전에 그녀는 이미 전설적 색소폰 연주자인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등과 함께 공연을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고 그녀는 나중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가서 대가 버드 파월(Bud Powell)과 피아노를 같이 공부하기도 함.





<Alice Coltrane의 첫 남편이자 보컬리스트 Kenny Hagood>



1950년도 후반 무렵, Thelonious Monk, Charlie Parker, Miles Davis와 같이 공연하기도 했던 보컬리스트 Kenny Hagood 와 결혼해서 프랑스 파리로 옮겨 결혼생활을 했는데, 딸이 태어날 무렵인 1960년 케니는 점점 헤로인에 중독되어 맛탱이가 가기 시작했음. 그의 중독 때문에 그들의 짧은 결혼생활은 끝을 맞고 그녀는 다시 딸과 자신의 고향 미시건으로 돌아왔옴. 디트로이트 등지 클럽에서 비브라폰 연주자 Terry Gibbs와 협연하며 지내던 중 62년 그녀는 그녀 평생 영적 동반자인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3년 후인 그 둘은 65년 멕시코에서 결혼식을 올림.




<뉴욕, 멘하탄에 위치한 클럽 Birdland. 맨 왼쪽부터 Tommy Potter, Charlie Parker, Dizzy Gillespie, John Coltrane>



재미있는점은 앨리스는 존에게 말을 걸기 이전부터 그를 알아왔고 존경했다고 함. 존 콜트레인은 62년에 디트로이트에 있는 클럽에 연주를 하러 왔는데 그 무렵 앨리스는 존의 실험적인 앨범 "Africa/Brass" (1961)를 듣고 깊은 영감을 받은 상태였는데 그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 이듬해인 1963년 그녀의 동료 Terry Gibbs의 초대를 받아 뉴욕 버드랜드 클럽(Birdland)에서 연주를 하던 존 콜트레인을 두번째로 보게되고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존은 엄청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앨리스는 그의 침묵을 엄청 시끄럽다고 표현할 정도였음. 몇일뒤 존은 쑥스럽게 클럽 스테이지뒤에서 그녀를 등지고 어떤 멜로디를 불기 시작했고 연주 후 앨리스에게 다가가 이것은 당신을 위한 헌정곡이라고 했다고 함.


그녀의 말을 인용하자면,
 “I had an inner feeling about him. ... At Birdland, that same feeling would come back, something that I comprehend was associated with my soul or spirit.” 
"그에게 내면의 감정을 느꼈어요. ... (중략) .... Birdland에서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제 영(soul)이나 혼(spirit)에 연관된것이였죠."




<'65년 존과 엘리스(일본 신혼여행 사진으로 추정됨)> 



많은 사람들이 그 둘의 관계는 일종의 음악선생님과 제자같은 역할로 축소시키곤 하는데,
물론 그 당시 존 콜트레인은 음악적으로 그녀보다 월등히 뛰어났지만. 그녀를 만나기 무렵인 63년에 존 콜트레인은 여전히 ​모든 연주자가 그렇듯 ​모달-재즈의 틀 안에서 갇혀있었고, 이미 전부터 딱딱하고 전통성만 추구하던 비밥씬에 환멸을 느껴왔던 앨리스가 그의 삶에 들어간후로 그의 음악은 코드, 멜로디, 템포로 이루어진 우리가 소위 부르는 "재즈"라는 틀의 관습을 넘어 서기 시작했어. (우주로 가기 시작)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의 후기 아방가르드-재즈 앨범 Ascension, Om, Meditations 등은 모두 앨리스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되도 과장이 아닐것.
마치 이 둘은 음악적 혁신을 개인적인 깨달음을 향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할까?





<John Coltrane>




반면 존 콜트레인의 연인 관계를 짧게 설명하자면,

1955년 첫부인 나이마(Naima)를 만난 후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영적 세계에 깊게 빠지게 되고 그결과 오랜 악순환의 굴레였던 술과 마약등을 끊는 계기가 되지만 60년도 무렵 자신에 한계와 권태를 느낀 그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 어느날 갑자기 가정을 내팽겨치고 자아성찰을 하며 집을 나가 방황하는데 그때 만나게 된 상대가 바로 그의 부인이 될 앨리스 맥레오드 (Alice Mcleod) 였음. 

그녀는 온화하며 보수적인 첫 부인과는 달리 영적으로 진취적이였고 무엇보다 콜트레인이 심취해있던 힌두교 사상에 심취해있었음. 콜트레인이 원했던 "내 삶에 다른 변화"가 아니였을까?

콜트레인의 첫 아내와 별거할때쯤인 63년도부터 앨리스와 교제를 시작해, 카발라,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등 다양한 종교를 함께 깊이 성찰하면서 그의 방법으로 사운드에 녹여냈고 그 결과 <A Love Supreme> 이라는 신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은 세기의 명반을 만들어냄.





<A Love Supreme>


짧게 이 앨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앨범은 존 콜트레인 자신이 종교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논문적 형태의 명제로 나누어 서술했는데,
인정(Acknowledgement), 결심(Resolution), 수행(Pursuance), 찬송(Psalm)이라는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되있음.
앨범을 제작할 무렵 그는 앨리스와의 사이에서 득남을 하게 되었고 그 사건이 앨범을 낳게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되었다.


앨범 라이너 노트에,


“During the year 1957, I experienced, by the grace of God, a spiritual awakening which was to lead me to a richer, fuller, more productive life.“
중략 ..
“1957년 나는 신의 축복으로 영적인 자각을 하게 되었고 보다 풍성하고 생산적인 삶으로 인도되었다”라고 고백했을 정도니 그의 종교적인 신념이 어느정도였는지 짐작할수 있겠지?
콜트레인의 농후한 기술과 영적 사상들이 녹아있어 다소 난해하게 들릴수 있는 앨범이지만 어려워하지말고 그냥 음악 자체를 그냥 느끼듯 들어보자 이기야!

(p.s여기서의 그가 말하는 "신"은 특정 신이라기보다 그는 모든 종교를 인정하는 유니버셜리스트(Universalist) 였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는 없길)



<앨리스와 존>



1967년 존 콜트레인은 나이 40살에 만성간염이 간암으로 악화되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운지를 하게됨. 그는 종교에 귀화되기전 정키급 헤로인 중독자였는데 외과의 말에 따르면 최초감염 이후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재즈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충격적이였는데, 이를 회상하는 마일즈 데이비스 역시 좀 맛탱이 간건 알았지만 그 정도로 아픈진 몰랐다고 함.

콜트레인은 앨리스에게 있어 남편 이상의 존재였기때문에 앨리스와 존을 잘 알았던 주변 가족과 지인들이 그녀를 위한 걱정이 끊이지 않았음.
그도 그럴것이 그의 요절 이후 앨리스는 수년동안 고질적 불면증과 뼈가 다 드러날정도의 극심한 체중감소를 겪으며 고생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체중 감소와 불면증 등의 문제는 남편을 잃은것에 대한 슬픔과 우울증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의 영적 발전을 위한 극도의 수행 때문이었다고 함. 심지어 열을 견디기위한 극심한 고행 동안 오른손의 살점이 녹아내려가고 손톱이 검게 변하는 3도 화상을 입을정도로 미친듯이 몰두했음.
그러나 그녀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그의 죽음이 그녀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건 짐작해 볼 수 있는 점인것 같다.




<Ohnedaruth>


그뒤로 그녀는 속세를 완전히 떠나 힌두교의 스와미(Swami)가 되기 전인 68년도부터 77년도까지 9년의 시간동안 무려 13장의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데, 그녀의 첫 앨범인 "A Monastic Trio"는 운지한 남편을 위한 그녀의 솔로 커리어 첫 앨범이자 헌정 앨범이다.


앨범 수록곡이자 첨부한 곡의 제목인 "Ohnedaruth"는 존이 죽기 생전에 앨리스가 지어준 힌두식 이름이이고 힌두어로 "Compassion(연민)" 이라는 뜻이였음. 앨리스는 원래 피아노가 주력 악기였지만 중간중간 하프를 틈틈히 독학하며 공부했는데 그녀의 첫 앨범인 <A Monastic Trio>는 그래서인지 테크닉적으로도나 앨범 전체적인 완성도로나 볼때 약간 부족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녀가 남편 밴드인 존 콜트레인 그룹(John Coltrane Group)이 아닌 솔로 커리어로서 시작하는 첫 앨범이라는 것과 그녀가 "콜트레인" 이기 이전에 환멸을 느끼던 재즈의 모든 창조적 한계를 허물고 하프를 우주선 삼아 그녀만의 우주로 가는 첫 발화점이 된 의미있는 앨범이기도 함.  커버사진에 보이는 하프는 존의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 얼마전 그녀를 위해 주문한 하프였고 결국 존은 이 하프가 와이프 손에 들려 연주되는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음..
그래서인지 하프의 글리산도(Glissandos)와 아르페지오(Arpeggios)로 가득찬 이 앨범은 마치 기약없이 돌아올 누군가를 기다리는듯 영원한 울림으로 들려오는것 같다.



 <존이 결국 보지 못하고간 하프>


앨리스는 첫 앨범을 시작으로 시간이 감에따라 스타일이 점점 전위적으로 바뀌게 되는데 물론 그녀가 음악 자체를 자신의 종교적 관습과 철학을 투영하는 매게체로 사용하여 그렇기도 하지만, 그녀는 피아노를 일출에 비유하고 하프를 일몰에 비유하여 하프가 가져다주는 "미묘함, 고요함, 평온함"에 감명받았다고 생전에 말한것으로 미루어 봤을때, 그녀가 선택한 하프라는 악기의 영향도 크지 않았나 싶다.




<Journey In Satchidananda (1970)>


위에도 언급한 앨범 <A Love Supreme>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콜트레인 부부의 종교의 유니버셜리스트 적(Universalist's view) 철학은 1969년 힌두 스와미(Swami)이자 영적 구루(Guru) 미국의 페스티벌 Woodstock을 연 장본인 인 사치다난다 (Satchidananda)를 만났을때 더 명료해졌는데 앨리스는 힌두의 자아성찰 철학에 매료되어 있던지라 그와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제자 관계가 되었고 앨리스는 투리야산기타난다 (Turiyasangitananda) 라는 힌두식 이름을 갖게되었음.
후에 사치다난다와 동행하여 인도로 영적 순례길을 떠나기전 그 주제로 앨범을 만들게되는데 그것이 그녀의 천재성과 내면의 세계가 뚜렷하게 돋보이기 시작한 Journey in Satchidananda (1970)임. 

전 앨범과는 다르게 <Journey In Satchidananda>에서는 풍부한 사운드적 색체로 생명력를 가져왔고, 듣고 있으면 그녀의 철학과 사상이 녹아들어 재즈의 한계뿐만 아니라 동/서양이라는 소리적,문화적 장벽의 한계를 허물어 마치 신성한 느낌까지 들음.




<Universal Consciousness (1971)>

인도로 사치다난다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앨리스는 1971년 곧바로 다음 앨범 <Universal Consciousness>를 녹음하게 되는데, 이 앨범을 기준으로 그녀는 존 콜트레인의 제자들 중 가장 떠오르는 인물로 재조명을 받게돼. 이 앨범에 대해 그녀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앨범은) 우주적 소리의 상징(emblem)으로서 우주적 사고를 모두 포용하는 토탈리티 컨셉(Totality Concept)이다.”이라고 표현했음.
그녀에게 매번 혹평했던 DownBeat 조차도 <Universal Consciousness>를 "새로운 음악의 모범"이라고 부르며 그 위엄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함.




<Alice Coltrane - World Galaxy (1972)>




<영적 지도자로서의 앨리스>


위에도 언급했듯 77년까지 앨범 활동하고 그녀는 은둔생활을 시작했다고 했지?
1976 년 그녀는 힌두 성전인 아쉬람(Ashram)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고 재즈계와 세속을 완전히 떠나 주황색 로브를 입고 영적 지도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1970년대 였고 시대도 시대였던 만큼 거의 모든 록스타나 재즈 뮤지션 연예인들이 동양의 신비주의에 한번씩 겉멋으로 발만 담그고 나오지만 그녀는 진정으로 힌두교 스와미가되었음. 그녀가 후에는 더 많은 영적 세계에 자신을 헌신하기 위해 물질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성한 계시에 대해 4 권의 책을 쓰기도 했는데,
그때 학생들이 그녀를 부른 이름이 바로 힌디어로 “초월적 신의 축복중 가장 높은 노래"라는 뜻의"Turiyasangitananda" 다.




<Transcendence (1977)>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에서 발매한 스튜디오 앨범이 몇 개 더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녀의 음악은 더 이상 그녀의 오리지널 작곡이 아닌 인도 성가(chants)들을 부른걸 녹음한것들임. 그녀의 마지막 두 워너 스 앨범 인 Radha-Krsna Nama Sankirtana와 Transcendence는 둘 다 1977 년에 발매되었는데, 둘 다 그런 종교적 음악으로 구성되어있고, 곧 더 이상 공개적으로 공연하거나 음반을 내지 않아.
몇 년 후, Turiya Sings (1982), Divine Songs (1987), Infinite Chants (1990), Glorious Chants (1995) 등 4 개의 성가 시리즈가 발매되기도 하지만 내게는 너무 힌두 성가적인 색체가 강해서 듣기 어렵더라.

여담으로는 서브컬쳐 씬 음악에 관심있는 게이들은 잘 알법한 Flying Lotus가 바로 그녀의 손자였다는거 알고 있누? 피는 절대로 못속인다.
인터뷰 보면 어렸을 때 자라면서 플라잉 로터스는 매주 일요일 아쉬람 성전에 있는 앨리스를 방문하곤 했는데 그때 앨리스는 오르간을 울리며 예배와 찬송을 인도했고 그때의 오르간 선율이 아직 기억에 강렬하게 각인될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함. 또 10대때 이모와 함께 인도로 여행을 갔는데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앨리스의 발에 키스하는 것 봤다고 할정도니 그녀의 동양 신비주의 철학은 그냥 겉멋이 아니라 진짜였다는걸 짐작할수 있겠지.





<그녀의 아들 Ravi>


그리고 긴 속세를 떠난 긴 공백기간을 거치다가 1995년도부터, 다시 음악에 관심을 갖고 씬으로 복귀하게 되는데, 1999년에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인 <Astral Meditations>이 있고 그 이후로 몇 년 뒤 2004년, 앨리스와 존콜트레인 사이에서 낳은 색소폰 연주자인 Ravi Coltrane (라비 콜트레인) 과 Oran Coltrane과 함께 마지막 앨범 <Translinear Light>을 발매했어.




<Translinear Light (2004)>


그녀의 친 자식인 Ravi와 Oran이 프로듀서와 색소폰연주자로 참여한 이 앨범은 깊은 그녀의 고대 영적지혜가 녹아있는 선율을 현대적인 해석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본질은 잃지 않고 밸런스를 이루는데 그녀의 깊은 영성과 여정을 축하하는, 아름답고도 관대한 선율의 앨범임.
또 앨리스의 친한 동료들이자 재즈계의 거물인 연주자들 (찰리 헤이든, 잭 디 조넷 등등)도 참여해 빛내준 기념비 같은 앨범이니 꼭 들어보길.





<뉴욕에 있는 두 부부의 묘지>



마지막 앨범 발매를 기점으로 3회의 투어를 끝으로 Alice Coltrane은 폐 호흡기질환으로 2007년 1월 12일 그리워하던 남편 존 콜트레인 곁으로 승천(Ascension)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 존 콜트레인이 죽었을때 그는 40살이였는데 앨리스는 그의 죽음 40년 뒤에 그를 따라감. 




<Going Home>


그녀의 신비한 음악만큼이나 신비했던 그녀의 삶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앨리스 콜트레인에 대해 오해를 혹시 갖고 있거나 이미 그녀의 이름을 들어 알고 있던 게이들은 궁금증이나 의문이 이 글을 읽고 어느정도 그런 부분들이 해소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존 콜트레인을 무척 좋아하는 팬이기에 그에 대해서 먼저 쓸까 했지만, 존 콜트레인은 많이 알려져 있으니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앨리스에 관해 먼저 쓰기로 함. 시간되면 나중에 존 콜트레인이나 다른 음악가들에 대해서도 한번 적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콜트레인 가족내에서 누군가 운명을 달리하면 장례식에서 연주한다는 앨리스 콜트레인의 <Going Home>을 올리며 마칠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