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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미스터리,괴담,썰

득이 되지 않는 인간을 걸러내는 방법.txt

by .           202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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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해가 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간하는 능력을 갖추고 살아가는데

 

인간이 이것을 활용함에 있어 나쁘게 부르면 차별이고

 

사회적으로 갈고닦아 적재적소에 쓰면 훌륭한 안목이 된다.

 

인간으로서, 특히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사는 이상 우리는 자연 속 어떤 동물들보다 남과 마주하며 살아야 하는 필연을 지닌다.

 

항상 분간 속에 살 수밖에 없기에 이 ‘분간’이라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사기나 꾀임에 빠진다든가, 뻔히 보이는 파멸의 불구덩이 속에 자신을 장작불처럼 쉽게 던지는 행태는

 

상대가 나에게 해가 되는 인물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물론 혼자 자빠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굳이 뻔히 보이는 돌무더기를 향해 발을 뻗을 필요는 없듯이

 

내게 해가 될 것들(관계들)을 미리감치 피하는 편이 훨씬 현명하다.

 

땀 흘려 번 정직한 노동의 대가만 신경 쓰다 결국 빨대 꼽혀 타인의 좋은 자양분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인생일까?

 

그 길을 피하기 위해 나라고 큰 인생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준 세 가지 정도는 갖고 있다.

 

대체로 아주 정확한 편이라 별일 없다면 죽을 때까지 같은 기준을 유지할 것 같다.

 

대부분 아주 간단한 가정교육의 결과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첫째는 자기보다 밑에 사람에게 대하는 행실을 지켜보는 것이다.

 

근본이 비뚤어진 인간일수록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일관적이지 못하다.

 

단순히 직설적인 것과 상대에 따라 직설적이게 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특히 초면에 손아랫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그러한데,

 

상대의 사회적 위치에 기세가 변하는 인간이라면

 

내게 주워 먹을 콩고물이 떨어진 순간 친숙하던 태도 역시 돌변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관계가 깊어져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둘째는 감사를 어떻게 표현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성향 탓에 감정을 또렷이 드러내기 쑥스러운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어색하나마 꼬박꼬박 보답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느냐, 당연하게 넘기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질을 드러내는 아주 근본적인 차이 중 하나다.

 

가볍게는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에서부터 앞서 문 잡아주는 낯선 이웃,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 젊은이 등등….

 

정말 별것 아닌 일상의 호의에도 고맙다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선의에 대해 인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중에 혹시라도 주어질 보다 큰 호의 역시 잊지 않을 것이다.

 

아무 말 없이 타인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 정도 호의가 아니면 안 돼’라는 적반하장 식 기준을 갖고 있거나

 

채우고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는 무저갱 같은 탐욕을 품고 사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역시 관계가 깊어져 봤자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으므로 아무 의미가 없다.
 

 

 

  셋째는 자기 물건이 아닌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마트에서 물건을 집었다 내려놓는 행위를 예로 든다면 처음 그 상태로 정렬해놓는 사람은 열에 하나쯤 된다.

 

그중 넷은 대충 자리에만 올려놓고(이 정도만 해도 다행) 그중 다섯은 제자리도 아닌 곳에 쑤셔 넣고 모른 체 돌아선다.

 

그만큼 미개하거나 배우고도 못 배운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데 이게 안 되면

 

작게는 도서관 책에 밑줄을 죽죽 그으며 읽거나 남에게 빌린 차에 기름 한 방울 없이 돌려주는 등의 진상짓을 태연하게 저지른다.

 

사실 이런 것들이야 묘하게 짜증 나는 데서 그치는 수준이지만 그런 진상이 내 인생에 깊숙이 개입된다면

 

짜증을 넘어 주변 관계를 파탄 내기 시작한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다루는 태도.

 

그것은 기본적으로 ‘남’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아보는 좋은 척도가 된다.

 

꼭 이타적일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관계에 있어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인간인지는 확인해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서로 잘 맞지 않더라도 좋은 기분으로 헤어질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 세 가지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는 사람 중 이 세 가지 가정교육이 지켜지는 사람은 열에 다섯도 안된다.

 

개인적으로 기준 미달의 사람들을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필요에 의해 활용하는 도구고 수단이다. 나누는 대화, 감정표현, 예의범절….

 

모두 철저한 사회적 가면의 일부일 뿐 절대 내면을 공유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나는 이런 꾸며진 처세에 아주 능숙하다.

 

상처받지 않도록, 손해 보지 않도록, 언제 잊혀도 상관없도록 미약한 끈 정도의 관계만 조심스레 유지한다.

 

조금 삭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속 가능하지도 않고 서로 배울 점도 없다면

 

아무리 많은 관계가 있다 한들 그 속에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저 같이 밥 먹어주고 술 마셔주는 사람이라면 의미가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실망이나 좌절의 감정을 혼자 속으로 삼켜 넘기는 편이기에 지극히 나다운 외골수적 생각일 수도 있다.

 

다만 내 경우는 이런 식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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