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포,미스터리,괴담,썰

십자군 전쟁의 추악함.txt

by .           2021. 1. 25.
반응형

십자군 전쟁 원정로, 전쟁지도

 

 

 

우선 십자군 전쟁은

 

 

 

1095년에 비탄진 황제인 알렉시우스 1세 ( 콤네누스 )가 교황청에 지원을 호소하게되는데

 

 

 

 

 

 

이에 대한 대답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최초로 십자군을 제창하게된다.

 

 

 

명분은 예루살렘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이슬람교들로부터 박해를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의 성지순례도 못하게 된다는 이유로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당시 이슬람 특유의 관용적인 종교정책으로 예루살렘 안의 기독교 성지들은

 

 

 

존중되고 관리되고 있었으며 유렵 각지에서 방문되는것도 크게 문제가없었다.

 

 

 

이것도 문제가되지만 더 문제가 되는것은 도덕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는데

 

 

 

 

 

 

 

1. 종군자의 가족과 재산은 교황이 보호해준다.

 

 

 

2. 종군자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을 수 있다.

 

 

 

3. 형무소에 복역중인 자가 종군하면 세상의 법적인 죄와 종교적인 모든 죄도 사함을 받는다.

 

 

 

4. 종군자의 빚은 탕갑되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

 

 

 

5. 동방에서는 성자의 유골 , 금은보화 , 미녀가 많으니 전리품으로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다.

 

 

 

한줄로 요약하면 어떠한 개짓거리를 하더라도 십자군으로 참여하면 모든것을 용서받고 , 천국으로 갈수 있다는 개소리다.

 

 

 

 

 

 

그리고 십자군은 약탈과 살육도 일삼았는데

 

 

 

십자군은 우리가 생각하는 성전의 의마가 아닌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고 보면된다.

 

 

 

더구나 , 기독교인 아니면 모두 야만인이라는 생각으로 약탈과 살육을 일삼았던 무리들이고

 

 

 

기독교인을 보호하는 명분인 전쟁이 기독교국가도 공격하는 어처구니 없는일들까지 일어나는 추악한 전쟁이다.

 

 

 

 

 

 

유럽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촉구하면서 예루살렘에는 많은 보물이 있다고 선전을하였다.

 

 

 

- 1차 십자군 : 성전 수행이라는 명분아래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물자가 부족한 십자군은 같은 기독국가인 헝가리나 동유럽등 에서

 

 

 

약탈을 일삼았으며 헝가리에서는 유대인 학살도 저지르게된다.

 

( 이에 이슬람과 붙기도전에 성난 헝가리인들에게 전멸당한 십자군들도 있었다 )

 

 

 

- 1099년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은 이슬람의 관용정책과는 반대로 어린이 , 여자들을 포함한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대부분 학살 하였고

 

 

 

이슬람사원도 모두 파괴하게된다.

 

 

 

심지어 " 이슬람교도들이 죽기 전에 금은보화를 삼켰다! " 라는 소문을 내고서는 , 죽은 이교도들의 배를 가르고 요리해먹기도 하였다.

 

 

 

 

 

 

1098년 마라가 함라락되었을 때.

 

 

 

" 사흘에 걸쳐 십만명이상의 사람들이 죽어갔고 많은 이들이 포로로 잡혔다 " - 이븐 알 아시르 -

 

 

 

" 마라에서 우리들은 이교도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다. 또 그들의 아이들은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웠다 " - 라울 드 카엥 -

 

 

 

1099년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 성지의 주민들이 죽어갔다. 프랑크인 ( 아랍인들은 서유럽사람들을 프랑크인으로 부름 ) 들은 7일간 사람들을 학살했다.

 

 

 

알 아크사 사원에서 그들은 7만이 넘는 주민을 죽였다. - 이븐 알 아시르 -

 

 

 

" 많은 이들이 죽었다. 프랑크인들은 유대인들을 그들의 교회에 몰아넣고 산채로 태워 죽였다. 또한 성스러운 유적들과 아브라함의

 

 

 

무덤을 파괴하였다. 아브라함에게 평화가 있기를 .. - 이븐 알 카라니시 -

 

 

 

 

 

전반적으로 추악한 십자군전쟁이였지만 , 이 중 가장 추악한 것은 4차 십자군 전쟁이다.

 

 

 

4차 십자군 전쟁 ( 1202년 ~ 1204년 )

 

 

 

4차 십자군 전쟁은 예루살렘이 아닌 이슬람교의 본거지인 이집트 공략을 목표로 하였는데

 

 

 

십자군은 3만명 모집을 목표로 진행하였으나 , 1만명 정도뿐이 모집되지 않았다고한다.

 

( 이때 십자군은 돈을 받고 참여하는게아닌 돈을 내고 참여함 )

 

 

 

3만명이 도하할 배와 물자들을 베네치아로부터 받은 십자군은 베네치아에게 지불할 금액이 턱없이 모자라게되었는데

 

 

 

이에 베네치아는 십자군에게 같은 기독교 국가인 헝가리 왕국을 공략하는 조건으로 빚을 탕감하기로 권유를 하였고

 

 

 

이에 십자군은 망설임 없이 , 같은 기독교국가인 헝가리를 공격하였다.

 

 

 

그 다음은 약속된 금액을 지불하지 않은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그 곳에서는 십자군에 의한 학살과 화재 , 약탈이 벌어지게된다.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수많은 문화재와 예술작품들이 파괴되고 약탈되었으며 성직자는 살해당하고 여자들은 강간을당하게된다.

 

 

 

 

십자군의 창설제의를 한 동로마제국이 십자군에 의해 약탈되고 점령당하는 ( 라도식 )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발생하게된다.

 

 

이처럼 200년정도 진행된 십자군 전쟁은 성지회복이라는 명분 아래

 

 

실질적으로 살육 약탈 , 강간등으로 얼룩진 전쟁이며

 

이교도만 목표가아닌 재물의 눈이 멀어 기독교국가를 공격하고 심지어 동로마제국까지 점령한 전쟁이었다.

 

실제로는 이와 같이 추악한 전쟁이지만 우리는 아직 십자군은 정의를 수호하는 간지나는 군대의 이미지로 남겨져 있다.

 

 

 

3줄 요약

 

 

 

1. 십자군전쟁은

 

 

 

2. 살육 , 약탈 , 강간등으로 얼룩진 전쟁

 

 

반응형

댓글